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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서동욱 ..... 책의 풍경 속으로 .....
부제 : 험한 길을 지나 별에 이른다.
인간이란 얼마나 다르며, 그 인간이 자란 환경과 경우 또한 서로 얼마나 다른가!
-헤르만 헤세.『수레바퀴 아래서』
1.
중·고등학교 시절을 돌이켜 보면, 그것은 한편의 꾸준한 탈출기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혹은 옳다고 믿지않는 그 무엇으로부터 나는 계속적으로 탈출하려 애쓰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탈출기라기보다는 투쟁기라고 불리는 편이 더 정확할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머릿속에서 투쟁이란 것도 어쩌면 일종의 탈출을 위한 한 방편이었는지도 모를 일인지라,
하여튼 나는 탈출기라는 쪽이 더 마음에 든다.
나의 탈출, 나의 투쟁. 그 이야기를 하려 한다.
2.
중학교에 갓 들어갔을 무렵,
바로 옆반에 있는 중3 누나들은 우리 반 장난꾸러기들에게는 신비함 그 자체였나 보다.
늘 국민학교의 여자아이들만 보아 오다가,
처음으로 2차 성징이 나타나는 여자들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는지,
장난꾸러기들은 한 친구를 누나들 쪽으로 냅다 밀어버리는 장난을 걸어댔으니까.
그러면 누나들은 요녀석! 하고,
또 장난꾸러기들은 줄행랑을 치고,
밀려서 누나들 쪽으로 나가떨어진 아이는...
...민망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해서 얼굴이 새빨갛게 되어 교실로 뛰어들어오는,
뭐 그런 장난이었다.
그때 나이에 두살 차이면 정말 어마어마하게 느껴졌다.
누나들의 대부분은 우리들보다 키가 훨씬 컸고, 힘도 세어보이던 때였다.
그 장난이 왜 그렇게 재미가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것은 어쩌면 어린 남자아이들의 용기를 증명해 보이자는 유치함이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들 중 아무도 이 장난에 대해 나중에 씌워질 `그' 누명에 대해서는 상상조차 하고 있질 못했다.
사실 그때는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조차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러던 하루,
갑자기 교사들 몇 명이 몽둥이를 들고 점심시간에 교실로 몰려 들어 왔는데,
그 하는 양이 흡사 전경들이 시위 진압하는 듯하여 우리는 먹던 밥숟가락을 그대로 든 채 영문을 몰라 하고 있었다.
그들은 몽둥이로 복도에 있던 아이들부터 몰아 교실로 집어넣더니...
...앉으라고 외치면서 서 있는 아이들의 머리를 때리기 시작했다.
우르르 몰리듯이 모두들 자리에 앉앗다.
밥을 먹던 아이들은 물론이고,
축구하러 나가려던 아이들도 축구공을 든 채로 일단 아무 바닥에나 주저앉아 있어야 했다.
중3 누나 하나가 교사들에게 가서 1학년 몇반 애들이 `그'걸 한다고 말한 모양이었다.
`그'것의 정확한 명칭은 간간이 교사들입에서 튀어나왔지만...
우리가 처음 듣는 말이어서 확실히 알아듣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결렀다.
게다가 자신이 왜 맞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지않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더욱이 `그'게 뭔지를 깨닫는 데 오래 걸렸나 보다.
일반적으로 그만 때리고 나가게 마련인 시간이 훨씬 넘어간다는 걸 깨달았을 때,
우리는 우리의 죄목을 제대로 알아들었다.
그것은 성추행이었다.
우리가 한 장난이 `밀기'라든가, 좀더 구체적으로 `밀어 부딪치게 하기'쯤 되는 이름이 아니라...
...`성추행'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 일로 우리들은 죽지 않을 정도로 두들겨 맞게 되는데,
맞은 것도 맞은 것이지만,
나에게 가장 뼈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은...
...그때 우리는 단 한 마디도 말할 권리를 갖지 못한 채, 쓰레기로서 취급되었다는 것이었다.
머리에 피도 안마른 놈들이 여자는 알아가지고, 비겁하게 약한 여자를 상대로,
그것도 건방지게 두 살씩이나 많은 여학생들을 성추행을 했다는 것이 우리 죄목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지만 소용없었고, 우린 그저 범죄자일 뿐이었다.
괴롭게도, 옳지 않은 매라 할지라도 그 앞에서 우리는 대항할 힘이 없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그 죄목으로 교사들은 광분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만큼 날뛰었다.
오해 속에서 우리는 매우 심하게 구타당하고 모욕당했는데,
참다못해 한 명이 무슨 말이라도 하려고 하면...
그 스스로도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기억할 수 없을 만큼의 매가 다시 떨어졌다.
우리는 무릎을 꿇린 채 매맞고 모욕당하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분노하고 있었다.
부당한 폭력이 불러일으키는 분노는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뜨거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나 우리 반 아이들은 아직 대다수의 교사들이란 대화 가능한 존재이며,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성스러운 교육관이나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는 고급인력이라고 오해하고 있었다.
그 오해를 빨리 마무리지을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교사들 자신의 덕분이었다.
그후로 중학교 3년간 꾸준히 보여준 그들의 당찬 권위주의적 모습과,
일체의 대화를 거부한 채 주입식 교육만을 부르짖던 목소리,
보수주의, 가학성 피해의식, 소유욕, 무식함, 예의 없음, 게으름, 한심함…
모두 그들이 몸소 보여주었던 덕목들이었다.
지금에 와서도 그들에게 인간적인 아쉬움을 느끼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왜 그들은 그렇게 광분해야만 했을까.
왜 그들은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구타하는 그들에게서 느낀 `스트레스 해소의 상쾌한' 표정은 나만의 상상일까.
일어난 사실이 혹시라도 자신들의 생각과 다를까봐 안절부절 못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과장해서 남들에게 전하고 싶어하는 그 성향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교실에서 들리는 구타 소리를 듣고, 왜 지나가던 교사들까지 전부 들어오는 걸까.
그렇게 들어온 교사들은 다들 처음엔 조용히 보고만 있다가,
왜 우리가 겨우 말이라도 한마디 꺼내려는 순간이면...
...난데없이 끼어들어 선생님 말씀하시는데 건방지다며 발길질을 하는 것일까.
무능력을 은폐하려는 수단일까.
유일한 자기 만족의 방법일까.
실패한 인생에 대한, 망가진 교육 현실에 대한 대리 폭력일까.
아니면 그저 바보일까.
그날 우리가 모두 너덜너덜해지게 맞았을 무렵 담임이 들어왔다.
우리들은 모두 담임을 좋아하고 있었고 나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담임이 들어왔을 때 우리의 느낌은 각양각색이었다.
나중에 서로 이야기해 보고 알게 된 일이지만,
담임을 보아서 반가웠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나로서는 무척 안타까웠다.
그래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교사였는데, 이런 오해 속에서 만나야 한다는 게 정말 싫었다.
담임은 우리에게 자세히 이야기(!-교사들이 들어온 지 한시간 만에 나온 단어였다.)를 해보라고 물었다.
이야기해 보라는 그 당연한 말이 우리에겐 얼마나 기뻤던가.
교사들로부터 받는...
`쓰레기들, 병신들,
하는 건 없으면서 여자질이나 하는 놈들, 집에 가다가 강간할 놈들, 부모가 그따위로 가르친 놈들.'
...이라는 모욕은 아직 성욕이 무언지도 잘 모르는 중학교 1학년생들의 마음에 얼마나 큰 상처였던가.
어려서부터 성이란 나쁜 것, 숨겨야 하는 것, 추한 것, 멀리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주입받으며 살아온 아이들이 받은 모욕감, 충격은 또 얼마나 강한 것이었던가.
우리는 이제야 말을 할 기회를 받은 것이다!
너무도 말을 하고 싶었다. 빨리 해명하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처음으로 발언권이 주어진 그 순간,
친절하게도 다른 교사들이 앞을 다투어...
...우리도 들어보지 못한 자기 나름대로의 살붙임을 충실히 하여 우리 담임에게 들려주었다.
담임이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안 나머지 교사들은 다시 우리의 입을 막아 버리는 데 충분한 매질을 시작했고,
우리 담임은 자기 반 아이들이 `성추행'에 큰 쇼크를 받았다.
여전히 우리는 단 한마디의 말도 할 수 없었다.
담임은 다른 교사들에게 잠시 자리를 피해줄 것을 부탁했고,
그들은 `그럼 김선생님만 믿으며'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아쉬운 발길질을 하고 나가 버렸다.
갑자기 교실은 조용해졌다.
그 속에서 내가 평생 잊을 수 없을 일이 일어났다.
그것은 물끄러미 평소 좋아했던 우리 담임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시작되었다.
좋아했던 교사이긴 했지만 그도 교사인데,
나는 그가 불같이 화를 내며 저 교사들의 `믿음'에 부족함이 없는 매로 우리를 처벌하리라 믿었다.
그러나 우리가 올려다 본 그의 표정은 분노의 표정이 아니라 슬픔의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는 우리를 일으켜 세웠는데, 우리는 처음으로 무릎을 꿇고 있지 않아도 된 셈이었다.
한참 고요한 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울었다.
뭐랄까, 말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담임의 슬픈 표정에서 우리는 여지껏 참고 있던 모든 설움이 한꺼번에 폭발하는 걸 느꼈다.
우리에게 슬픈 표정을 보여준 그 자체가 고마웠다.
그때였다, 담임이 울기 시작한 것은.
처음에 조용히 눈물이 흐르더니 나중에는 우리와 함께 흐느껴 버렸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이놈들아'하면서 몇 대의 매를 때렸는데, 우리는 그 매를 평생 기억하게 된다.
나는 그 순간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그 매를 맞는 순간에 우리는 모든 것을 느끼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사랑의 매란 것이었다…
그런 것은 절대로 없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사랑의 매를 맞아보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그 때 맞은 아이들은 그 매와, 그리고 그 후 3년간 꾸준히 보여준 그분의 교육관에 의해,
그 김승규 담임 선생님을 가장 훌륭한 교육자로 자리매김해 두게 되었던 것이다.
그때 담임이 때린 매도 여전히 부당한 매였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형식을 취한 매라면 나는 맞게 된 것이 너무나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몇대의 매로 담임은 그 사건으로 나의 마음속에 깊이 남은 많은 상처들을 위로해 줄 수 있었다.
그것이 그가 의도했던 바는 아니었겠지만,
그의 마음이 느껴진 순간...
...모든 것은 이해될 수 있는 차원을 넘어 무언가 뭉클하게 통하는 감정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감정은 그 이후로 내가 탈출해 나가는 데 커다란 힘이 되어 주었다.
그 일 자체는 학년이 올라가면서 조금씩 잊혀져 갔지만, 그러한 경험이 남긴 것들을 잊혀질 수 없었다.
옳지 않은 것에 대한 강한 반발이 중학교 1년생의 머릿속에서도 어렴풋하게지만 매우 강렬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빛은 2년이 지난 후 같은 자리에서 다시 한번 한층 강렬한 형태로 다시 볼 수 있었다.
단련된 더 큰 분노와 함께.
활엽수림 속에서는 방울새가 쉬지않고 지저귀고 있으며......잔나무숲에서는 밤색 다람쥐가 나뭇가지 사이를 뛰어다니고 있었다.길바닥과 담 주위 그리고 메마른 고랑에는......초록색 도마뱀이 따뜻한 것이 기분 좋은 듯 숨을 쉬면서 몸뚱이를 반짝이고 있었다.풀밭을 넘어서는 아주 멀리까지 그칠 줄 모르는 매미의 높은 노랫소리가 울려퍼졌다.
-헤르만 헤세.『수레바퀴 아래서』
3.
바로 그 당시부터 읽기 시작했던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라는 소설을...
...나는 그 후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읽었다.
(음, 이렇게 이야기하면 아무 소용없다고 생텍쥐페리는 강조했었는데.
그렇다면, 한 300번이 넘지 않았나 싶다.)
왜 그렇게 많이 읽었느냐고 묻는다면 나로서는 그리 할 말이 없다.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지금에 와서도 간간이 그 책에 손이 가고 또 아무 생각없이 손에 들면 또 한번을 내리 읽어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 버티기 위한 나의 저항이었던 것 같다.
마음에 들지 않는 학교에 살아 있어야 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버티기 위해서, 어디론가 탈출해야만했던 것이다.
어디론가 - 이 책 속의 전혀 다른, 하지만 사뭇 비슷한 새로운 공간으로 나는 도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벤라프가 걷는 길의 방향을 나의 길 속에서 바라볼 수 있었고, 그의 느낌들이 살아숨쉬듯 다가왔다.
책을 읽는 동안이면 언제나...
...나는 잠시 이 삭막한 세상을 떠나 한적하고 양지바른 호숫가에 다녀온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가 낚아 올린 잉어의 힘찬 느낌이 낚시줄을 타고 손끝을 통해 나에게 전달될 때마다,
나는 얼마나 기뻤던가.
그가 걷는 산책길로 새들이 날아와 지저귈 때 나는 얼마나 평화로왔던가.
그가 키스를 할 때면 나도 설레였고, 그가 술을 마실 때 나도 취했다.
결국 그는 책 속에서 나와는 또 다른 나 자신이 되어,
감정의 공유라는 따스함을 함께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공유가 바로 이 사회로부터의 도피처가 되어 주었으며,
학교 안에서 내가 느꼈던 황량함, 살벌함들로부터 나를 지켜주었던 것이다.
그를 따라 초원을 걸으면서, 그를 따라 헤엄을 치면서, 그게 나에게 얼마나 커다란 힘이 되었던가.
내가 힘들 때 그는 내 곁에 있었고, 내가 흐느낄 때 날 안아주었다.
그리고 신비롭게도, 그가 슬프거나 힘들 때 내가 그를 위로하는 듯한 느낌도 가질 수 있었다.
4.
학교는 정말 커다란 모순 덩어리였다.
식민지 교육의 전당이었으며,
신 - 구 교사간의 이념 차이는 양쪽의 불완전함으로 인해 우물 안에 빠졌다.
교육보다는 운영부터가 어려운 상황으로 보였고,
더 이상 어디서도 그 당위성을 찾아볼 수 없는 이념 교육에 신물이 났다.
바로 그런 때에 김선생님을 비롯해서,
바람직한 교사상이라 생각했던 극소수의 교사들이 함께 어울려 하나의 집단을 이루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가 있었다.
나로서는 그러한 집단이 이루어진 것이 무척 기분 좋은 일이었고,
그들이 가끔 수업 시간에 조심스럽게 열어보이곤 하는...
아직 먼나라의 새교육을 미리 눈치챌 때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 몇 안되는 교사들은 이를테면 마지막 보루 같은 셈이었는데,
그들이 서로 가깝다는 것은 앞으로는 학교도 발전적이 될 수가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어떤 사건을 통해 중학교 3학년 때 완전한 변혁을 맞이하게 된다.
그것은 너무나도 큰 충격을 동반한 것이었는데,
교원노조 문제로 김선생님을 비롯한 몇 명의 교사가 교직에서 쫓겨난다는 사실이었다.
그 사건은 학교를 온통 뒤집어 놓았는데, 우리들에게 교원노조가 무엇인지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 어린 머릿속에서는...
...그 이유야 어떠하든간에 김선생님을 쫓아낸다면 그건 쫓아내는 쪽이 잘못하는 것이었으며,
김선생님이 옳다고 믿는 것은 내게도 옳은 것이었다.
김선생님이 없었더라면 평생 절대로 알 수 없었을 값진 것들
- 사랑의 매가 존재하며, 세상에는 참된 교사도 있다. - 을 생각해 볼 때,
절대로 김선생님을 보낼 수 없었고,
그런 교사와 함께 보낼 수 있는 권리를 학생들에게서 앗아간다는 것도 있을 수 없었다.
또한 다른 교사들이 좀 보고 배울 만한 사람이 나가버린다니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엉망진창이었다.
(하긴, 배울 능력이 있었더라면 교사가 되었겠는가마는.)
그 때부터 나는 교원노조가 어떻게 생긴 집단인지를 공부해 나가기 시작했다.
일단 힘으로라도 직위 해제(당시 김선생님에게 내려진 정부의 조치)를 막고 싶었는데,
교원노조에 대해서 무얼 좀 알아야 막을 수가 있을 듯 싶었다.
나는 주로 직접 찾아다니며 알아보는 방법을 택했다.
내가 연세대학교에 처음으로 들어가 보게 된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당시 연세대학교에서는 교원노조에 관한 집회나 세미나가 자주 열렸었다.
그런 공간에서 객관적으로 도대체 누가옳고 누가 그른 것인지를 판단해 보려 노력했다.
비록 이미 우리는 강한 반대운동을 펴 나가고 있었지만,
우리와 교원노조가 옳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은 그들의 목표가 100% 전부 다 바람직하고 옳은 일이라고 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최소한 여지껏 존재해 왔던 체계의 교육에 비교해 볼 때 그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는 것이었다.
구타, 이념교육, 계급 나누기, 성차별…
교과서 내외에서 느낄 수 있었던 많은 문제들이 본격적이고 심층적으로 이야기되고 있었다.
그런 공부를 시작하면서,
스승을 잃고 싶지 않았던 우리의 노력은...
...매일 한번씩 돌아가며 교육감에게 항의 전화 걸기,
...학생들의 참여적인 노력을 촉구하고 우리의 취지를 알리는 글을 쓴 전단을 학교에 뿌리기,
...대자보 붙이기 등 다양하게 시도되었다.
우리…`우리'라 부를 수 있는 강한 결속력을 가진 팀…
바로 2년 전 함께 그 매를 맞았던 아이들이었다. 든든했다.
물론 그 후에 우리팀은 더 커졌지만 말이다.
다른 교사들의 막강한 제지를 받으면서도 조금도 굴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느꼈던 교육제도의 모순과 스승의 사랑, 그 두가지의 조합이었다.
다들 얻어맞고 돌아와 다시 모일 때마다...
...그 때야 비로소 2년 전 보았던 그 분노의 눈빛을 우리는 서로에게서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부당한 폭력, 그것은 예상치 못하리만큼 커다란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2년 전에 우리가 교사들에게서 받았던 폭력이,
이젠 훨씬 커다란 규모로부터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무도 우리에게 스승을 빼앗을 수는 없었다.
교문은 굳게 걸려 잠기고,
김선생님을 비롯한 교원노조 교사들은 학교에 들어오지 못해 교문 밖에 서성대고 있었다.
그리고 끝내 그 마지막 날,
쫓겨가는 스승의 뒷모습을 응원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의 마음을 알려드리는 일이었다.
새벽부터 학교에 와서 모두들 각 복도마다 준비를 하고 있다가...
...교직원 회의가 끝나기 3분 전을 틈타 동시에 모든 교실 칠판에 같은 글을 적었다.
`00시 00분 정각에 운동장에서 김선생님을 배웅합시다.선생님을 사랑하는 모든 분은 나오세요.'
학생들은 모두 그 글을 보았다.
당연히 교사들도 그 글을 보게 되었고, 학교 스피커를 통해 저지 방송이 있었다.
운동장에 나오는 학생은 엄벌에 처한다는 등의.
칠판에 글을 쓴 아이들이 조사되었고 우리들 중 몇 명은 발각되어 교장실에 감금되었다.
그리고 다시 학생부에 끌려들어가 갇혀 있었다.
칠판에 썼던 약속시간이 다 되었을 때, 우리는 아직 학생부에 잡혀 있었다.
그리고 얼마나 가슴을 졸였던가.
혹시 나오지 않았을까…한 명이라도 나오지 않았을까…정말 아무도 나오지 않을까.
우리라도 가서 앉아 있어야 될텐데…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우리는 도망치듯 학생부를 뛰쳐 나왔다.
그리고 급히 운동장으로 달려나가는 길에 창문을 통해 보았던...
...운동장에 옹기종기 앉아 있는 300 여 명의 모습은 아, 얼마나 감격적이었던가.
눈물이 핑 돌았다. 우리 모두가 다 그랬다.
그렇게 모여 앉은 우리들 앞에서 김선생님이 교문 밖으로 끌려나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
내겐 유일했던 참된 교육자가 한때 같은 직업을 가졌던 자들에 의해서 돼지처럼 끌려 나가고,
우린 운동장에 앉은 채로 학생부 교사들의 매를 이겨내고 있었다.
내가 운 것은 너무도 분해서였다.
아무리 몸부림치고 아무리 부딪쳐도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은 저 덩치 커다란 벽이 너무도 분했다.
그 어린 분노의 `벽'이 바로 내가 여지껏 살아왔던 `사회'라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그 `사회'라는 걸 열심히 공부해서 기어이 그 벽을 넘어버리겠노라고 했던 것이...
...사회학과를 들어오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런 일이 있은 얼마 후, 수도원에서는 또 마력이 사라져 버렸다.선생들은 다시 질타하기 시작하였다.문을 닫는 손도 난폭해졌다.없어진 헬라스 방의 한 소년의 일은 거의 생각나지 않았다.
-헤르만 헤세.『수레바퀴 아래서』
5.
안그래도 없었던 학교에 대한 애정은 바닥이 드러난 지 오래였다.
그러면서 너무도 대학에 가고 싶었다.
빨리 배워 이기고 싶었다.
거대해 보이기만 했던 벽과 싸우고 싶었다.
그리고 특히 윤리라는 과목을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고등학교를 가지 않갰다고 결심하게 된다.
도저히 버티어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대학으로 가는 관문이라는 것 이외에는 그 어떤 의미도 가지지 못하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나는 가고 싶지 않았다.
도저히 중학교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오히려 한층 더할 고등학교에서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결국 검정고시를 알아보았다.
고교생들보다 훨씬 먼저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으며,
더 나은 환경을 가진 대학을 지원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컸다.
내신 문제도 유리했고, 더 이상 고민할 거리가 없었다.
어머니만 설득하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내게 어머니를 설득시킨다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남들만큼 여유있게 살지 못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공부라도 남부럽지 않게 시키고 싶은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었고,
내 결정이 어머니에게 드릴 충격이 날 괴롭혔다.
몇 주 동안을 고민하다가 결국 그날 따라 높아보이기만 하던 안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내가 긴 이야기를 하는 동안 어머니는 한말씀도 없이 듣기만 하셨다.
그리고 내가 어머니 앞에 `그래서 저는 고등학교에 가지 않겠습니다.'라고 그 어려운 결론을 지어 놓았을 때,
나는 그 후에 일어날 모든 상황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높다란 벽…그 벽에 부딪치리라.
그리고 한참이 흘렀다.
`그러렴…'
그게 다였다. 다른 어떤 말도 없었다. 나는 잠시 멍청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 후로 며칠 동안 나는 그 `그러렴'이 무슨 의미인지 고민을 해야만 했다.
이건 생각했던 것과 달라도 너무 다른 대답이었다.
최소한 그런 대답이 나와서는 안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단지 `그러렴'이라는 말만을 남긴 채, 하시던 뜨개질에 다시 집중하셨다.
어머니는 그때 내가 입을 스웨터를 뜨고 계셨다. 결국에는 내 동생이 입게 되었지만.
…여러 가지 두려운 충고를 들을 줄로 믿고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의외로 이처럼 다정한 말에 거뜬한 기분으로 깊은 숨을 내쉬며 교문을 나섰다.커다란 키르히베르크의 보리수가 늦은 오후의 따가운 햇살 속에서 조용히 서 있었다.
-헤르만 헤세.『수레바퀴 아래서』
6.
그 일이 있은 후, 고등학교 등록 날짜가 될 때까지 나의 고민은 절정에 달했다.
만일 어머니가 내 예상대로(누구나의 예상대로) 강하게 반대하셨더라면 나는 오히려 쉬웠을 것이리라고 확신한다.
나는 절대로 고등학교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렴'이라니.
그런 간단한 말씀에 나는 나 자신을 매우 객관적으로 다시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어쩌면 나는 오기를 부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남들과 달라 보이려고 이러는 것은 아닐까 하는 1차적인 고민부터 시작해, 수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나는 좀 더 객관적으로 고등학교라는 곳을 생각해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수 밖에, 김수환 추기경의 멋진 비유처럼,
자동차를 급히 오른쪽으로 틀면 승객들은 자연히 왼쪽으로 쏠릴 것이니,
중학교를 마치고 난 내 기분이 바로 그런한 것이었다.
스승은 없고 교사만 있는 학교. 김선생님을 쫓아내는 학교. 그 결정에 박수를 보내던 학부모들.
빨갱이라기에 정말 살갗이 빨간 줄 알았다던 친구 하나.
공부를 얼마나 잘하는가와 음악, 미술, 체육 성적이 맺는 은밀한 상관관계.
"너희 어머니는 너에게 관심이 없으신가 보지? 한번 오시라고 해."
특별활동 시간에 있던 사물놀이반이 없어지고,
교원노조 문제가 확대될 조짐이 보이면 우리는 교장실에 감금되기도 했다.
그게 내가 나온 중학교였다.
게다가 나에게 그렇게 어둡고 어지러웠던 중학교 시절이,
나와 동시에 학교를 다녔던 동기동창들 중 다수에게조차...
...어쩌면 별 사건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기억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많은 학생들이 아무렇게도 고민하고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게 더 나를 괴롭혔다.
그 연장선인 고등학교. 다시는 그런 곳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낚시질! 그것은 학교 생활을 하는 동안 가장 재미있었던 일이었다.가느다란 버들 그늘 속에 있으면 방앗간 둑의 물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왔다.깊고 조용한 물, 수면의 빛놀이, 부드럽게 구부러진 긴 낚싯대…고기가 물려서 끌어올릴 때의 흥분…파닥파닥 뛰는 싱싱하고 살진 고기를 손으로 잡았을 때 그 설명할 수 없는 기쁨…
-헤르만 헤세.『수레바퀴 아래서』
7.
나의 눈에 비친 기성세대들의 가장 큰 특징은 찌들어 있다는 것이었다.
여러가지 압력들이 그들을 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이 보여주는 삶이란...
...마치 휴일이라든가, 모임이라든가, 하는 정류장을 가진 출근길의 만원버스같은 인상이었다.
부릉부릉.. 출발합니다. 내리실 분은 앞으로 나오세요.
그들이 가장 즐겨 머무는 정류장 중에는 고등학교 동창회가 반드시 끼어 있었다.
그 동창회만 되면 신이 나서 떠들어대고 술마시고 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말하기를, 친구는 역시 고등학교 친구지 사회에서 만난 친구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무엇이 저들을 묶어놓은 것일까.
(나중에 그들의 그런 모습조차 그들의 찌들림을 증명하는 하나의 증거일뿐임을 깨닫기는 했지만.)
돌아보면 중학교에서도 배운 것들이 한두 개는 있는데,
고등학교에서도 두어 개는 배울 게 있지 않을까.
최소한 저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만이라 할지라도 고등학교란 역시 절망으로 가득 찬 공간일 것인가,
전혀 희망이 없는 철책으로 막혀진 공간일까.
객관적이 되려고 많은 노력을 했던 시기였다.
많은 사람과 대화를 해보았고, 더 많이 고민해 보았다.
그리고 나서 결국 나는 결정했다.
보란 듯이 이겨내고 싶었다.
아무리 희망이 없는 공간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 들어가 그것을 비웃어 주고 싶었다.
이겨내고 싶었다.
너희가 성스러움으로 가장한 보수의 깃발 속에 우리를 가두어 둘 때,
우리는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모르기 때문에 너희가 만든 제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너희를 이겨내고 싸우고 비웃기 위해 그곳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나를 위해서 그리고 한스 기벤라트와 하일너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8.
기성질서로부터 탈출하는 일은 늘 재미있었다.
수업시간에 도망간다거나 아니면 교사들의 우월의식을 대상으로 장난을 친다거나 했던 것들은...
...특별히 그 일 자체의 의미보다는 기성질서로부터의 탈출이라는 의미가 있었다.
꼭 막힌 학교에서 나를 지켜가고, 역동적인 하루를 보낸다는 것은 내게 필수적이었고,
그런 작업들은 바로 그 질서로부터의 탈출이 담당할 일이었다.
나는 그 탈출을 매우 즐겼다.
오히려 모든 일을 거꾸로 해나간 편이었는데,
그러므로써 교사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교묘히 그걸 빠져 나가는 일은 일종의 스포츠 같은 느낌마저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었던 일은,
나의 탈출에 경악을 금치 못했던 교사들이...
...내 성적이 좋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비굴하게 "허허 그놈 참…"하는 식으로 태도를 바꾼다는 것이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쾌재를 불렀다.
슬픈 쾌재.
알고 있나, 그대들은.
자신들도 하나의 희생양이라는 것을.
이 사회가 그대들을 얼마나 잘 이용하고 있는지를.
그대들 머릿속에 있는 그 별것 아닌 지식으로 살아가야 하는 약한 존재임을.
그때부터 나는 교사들을 적대적인 시선으로서가 아니라 불쌍한 하나의 희생물로서 바라보게 되었다.
그들도 나와 똑같은 입장, 아니 훨씬 못한 입장이었던 것이다.
이미 다른 가능성마저 잃어버린 채,
현상유지라는 중대한 의무만을 어깨에 이고 비틀비틀 걸어가는 이 사회의 희생양.
진정하십시오, 기벤라트씨. 나는 단지 학교 선생들을 말했을 뿐입니다.
-헤르만 헤세.『수레바퀴 아래서』
9.
고등학교 때.
교육제도의 문제성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몇 명의 학생으로 이루어진 집단이 하나 만들어졌고,
나도 거기 참여했다.
우리의 최우선적 문제 의식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교과서 내의 주입식, 획일식 사상 교육과 계급적 갈등을 심화시키는 내용들이었다.
정말 세심하게도 그러한 내용들은...
...세계사, 국사, 윤리, 국어, 영어 등 다양한 과목의 교과서 곳곳에 매우 정교하게 담겨져 있었고,
이러한 상황을 학생들에게 널리 알려 함께 공감하고 비판할 수 있는 안목을 갖자는 취지였다.
우리는 그런 전단을 제작했고...
...몇 월 몇 일 몇 시 정각에 미리 정해둔 학교 건물 꼭대기에서 각각 200장씩 허공에 뿌리기로 했다.
누구 하나라도 늦게 뿌리거나 빨리 뿌려 한 사람이라도 붙들리는 날에는 모두가 위험해지기 때문에...
...모두 동시에 뿌리고 재빨리 없어지기로 한 것이었다.
교사들이 바로 옆에 있어도 꼭 뿌리고 얼굴을 가리고 달려 도망간다는 것이 계획이었다.
강경대가 세상을 떠나 한참 신경들이 날카로와 있을 때였다.
글의 내용을 볼 때 붙들리는 날에는 어떤 처벌을 당할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우리 팀 중 한명은 퇴학당할 거라고 겁을 집어먹기까지 했었으니까.
그 날이 되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숨겨가지고 간 내 분량의 전단을 옷 속에 숨겨가지고 내가 맡기로 한 건물 꼭대기에 올라섰다.
둘러보니 앞 건물에 두 명, 옆 건물에 한 명이 보였다.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나머지 사람들도 제 위치에 서 있겠지. 자…뿌리면 되는거야. 3초 전, 2, 1, 0.
바깥쪽을 향해 확 전단을 뿌렸다.
장관이었다. 1,000장 가까운 전단이 동시에 고등학교 교정에 뿌려졌다.
행복했다. 긴장으로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었다.
그때 마치 줌인(zoom in)되는 카메라 렌즈처럼 저 건너편 건물 꼭대기 창문이 강렬하게 눈에 띄었다.
우리 팀 중 한 명이 맡기로 했던 바로 그 장소였다. 그 창문에서는 전단이 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가슴이 턱하고 막혀 왔다. 그리고 이런저런 생각을 할 틈도 없이 그 장소로 달려갔다.
마치 그 순간은 존재하지 않는 듯이 빨리 지나갔다.
내가 뿌린 전단들이 아직 미처 다 땅에 떨어지지 못하고 날아다니고 있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하늘을 쳐다보며 의아해 하고 있었다.
교사에게 붙들린 것은 아닐까. 발각된 것은 아닐까.
그 건물 꼭대기까지 뛰어 올라가는 데까지 나는 거의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창문 앞에 다다랐을 때,
늘 겁이 난다고 말하던 그 아이가 전단을 꼭 붙든채 하얗게 질려 떨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1층에서부터 교사들이 `저쪽이야!'하고 외치며 쫓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와 거의 동시에 그곳에 도착한 또 한명의 `우리'와 둘이서 힘을 모아...
...하얗게 질려 있는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창문으로 내밀어 경직된 손가락을 하나하나 떼어냈다.
이윽고 공간을 향해 전단들은 흩어져 날아 갔다. 마치 새처럼…
몇 초 지나지 않아 교사들이 우리가 있는 층에까지 올라왔다.
그들은 우리 앞에 우뚝 섰다.
숨도 쉴 수 없었다.
우리는 아픈 친구 하나를 부축하고 있는 두 명의 학생으로 보여야 했다.
교사들은 우리를 날카롭게 쳐다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그들은 다른 쪽으로 우르르 달려갔다.
대대적인 소지품 검사가 있었다.
10.
고등학교 졸업식이 있던 날,
이미 나는 연세대 사회학과에 합격했다는 사실을 확인했었고, 무척 기분이 좋았다.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열려 있는 것이 느껴졌고,
지긋지긋한 고등학교를 나서는 발걸음은 가벼울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버텨냈구나…잘 버텼구나…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김승규 선생님, 교원노조, 우리의 노력들, 전단, 친구들, 성적,
또 다른 도피처였던 그룹사운드를 비롯해 이 글에서 마저 이야기하지 못한 그 많은 다른 이야기들…
그리고 그 순간,
한스 기벤라트와 하일너가 멀리 어디선가 그 의미를 확실히 알 수 없는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
...나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다.
교실 스피커를 통해 곧 졸업식이 있을 예정임을 알리는 방송이 있었다.
모두들 체육관으로 나오라는 방송이었다.
"저 방송 말인데, 한번도 좋은 소식은 전해 주지는 않는구만."이라고 나의 오랜 친구가 말을 건넸다.
그게 왜 그렇게 웃긴 말이었는지, 우리는 모두 배를 잡고 웃어댔다.
너무나 통쾌하도록 웃었기 때문에 그간의 모든 체증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웃긴 이야기는 아니었건만, 우리 모두는 그것까지 너무나 우스웠나 보다.
행복했다.
그리고 웃음이 잦아들 무렵...
...나는 교실을 빠져나와 수업시간에 도망갈 때면 늘 들리던 샌드위치 가게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늘 함께 도망다니던,
그들이 우수한 학생이라 부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던 몇 명의 친구들이 함께 학교를 빠져 나왔고,
그날따라 샌드위치는 너무나 맛이 있었다.
전부 자랑인 듯 무슨 맛인지도 모르는 맥주를 한 캔씩 들고...
...간간이 와아 하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사이에 두고 행복해 했다.
샌드위치 가게를 나서면서,
우리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너무도 자유롭게 한 개피씩 담배를 꺼내어 물었다.
하늘로 피어나는 연기 속으로 그 동안의 오랜 고교시절이 함께 날아갔고,
아무도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기벤라트는 이 한때의 정적과 이상스럽게 괴로운 갖가지 추억으로부터 떠나, 머뭇거리면서 지향없이 정든 생활의 골짜기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헤르만 헤세.『수레바퀴 아래서』
*
글쓴이 서동욱은 1974년 봄에 태어났다.
5공에서 6공으로 넘어갈 즈음에 중학교에 들어가서 김영삼 후보가 유세를 하던 해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운동권이 될 줄 알았으나,
그것도 뾰족한 수가 아닌 듯해서 좋아하던 음악 해보고,
지금 공부중. 연세대 사회학.
[ 관련글보기 : ..... 전람회 ..... 서동욱 ..... 김동률 ..... ]
[2009/08/27 22:16]
[2024/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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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pple 애플 ..... iPad .....
[2010/04/10 04:04]
MacBook 아닌 iPad 유혹에 흔들릴 줄이야.
(꿈의 세컨인 MacBook,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
iPhone OS 4.0 후광효과가 가라앉은 뒤에 정발된다면 무사할 수 있을지도.....
SONY VAIO & MDP & NX73 조합으로도 부족해서,
아니 솔직하게 아름다운 자태의 유혹에 손 들어 버리고 iPod 15G 용량을 데려오고야 말았던,
그 순간을 다행이라고 해야 할 지, 불행이라고 해야 할 지, 모르겠다.
[2010/12/18 18:25]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VAIO SRX 이후,
두번째 사랑이 될 가능성도 보인다.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VAIO SRX 그 녀석은 여전히 더없이 사랑스러운데,
이 녀석도 그렇게 오래도록 버텨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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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호 .....
[2008/12/18 00:08]
사실 그렇게 여유있는 시절이 아니건만,
워낙 내가 선호하는 장이라서,
살짝 들여다보지 않을 수가 없다.
게다가,
무려 14개월을 방치한 탓에,
(-)로 돌아선 수익률도 (+)로 돌려 놓아야겠기에.
제발 아무리 귀찮아도 6개월에 한번은 들여다 보자.
그 정도만 신경써도 연10%는 가볍게 올라서는데,
왜 꼭 1년 이상 방치했다가 보수(?)하느라 고생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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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2016] ..... ISU WORLD CUP SHORT TRACK SPEED SKATING .....
[2015/12/18 00:17]
지난 경기들 뒤늦게 하이라이트로 복습.
남은 일정이라도 잊지 말아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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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곱셈공식 ... formulas of multiplication .....
(a+b)² = a²+2ab+b²
(a-b)² = a²-2ab+b²
(a+b)(a-b) = a²-b²
(x+a)(x+b) = x²+(a+b)x+ab
(ax+b)(cx+d) = acx²+(ad+bc)x+bd
(a+b)(a²-ab+b²) = a³+b³
(a-b)(a²+ab+b²) = a³-b³
(a+b+c)² = a²+b²+c²+2ab+2bc+2ca
(a+b)³ = a³+3a²b+3ab²+b³
(a-b)³ = a³-3a²b+3ab²-b³
(a²+ab+b²)(a²-ab+b²) = a⁴+a² b²+b⁴
:
:
:
[2008/02/17 21:39]
저런 걸 외워야 했었나.....
기억에 없다.....
근의 공식 하나도 못 외워서 허덕였으니.....
사실 뻔하지 않은가.....
더 이상 말하면...출신학교 망신이니...여기까지만.....
[2008/12/17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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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션 임파서블 .....
[2006/05/06 14:20]
특별한 기대도...특별한 실망도...없었다.....
톰 크루즈의 미소는...여전히 매력적이고.....
온갖 장비들과 멋진 스포츠카는...너무도 탐나고.....
정신없이 지나치는 비현실적인 장면들은...그저 즐겁다.....
[2011/12/17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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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혹 .....
[2012/12/17 23:27]
책, 시.
수학, 건축.
블랙.
시트러스 향.
중저음.
화이트 셔츠, 커다란 손목시계.
하늘이 보이지 않는 숲길, 대나무.
달, 눈 결정, 격자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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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대 기호 식품... .....
[2008/03/12 21:23]
중독성을 지니는 4대 기호 식품.
술. 담배. 커피. 콜라.
아마도 그 정도가 아닐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술 담배는 아직 시도조차 해 본 적이 없고,
콜라는 체질상 안 맞아 기피 대상이고,
커피도 평균보다 과하지는 않은듯 보인다.
내 나이 즈음에서,
하루 한두잔 혹은 두세잔의 커피.
그리 과한 수준은 아니지 않은가.
뭐 과거 한 때,
하루 8~10 잔을 마셔대던 시절에 비한다면야 더더욱.
남들이 간혹 금연 혹은 금주를 고심해 보듯이,
나는 간혹 커피를 끊는 걸 고심해 본다.
(이 역시 과거 한 때 6개월 정도 끊어본 적은 있었다.
직장생활 하면서 결국 물거품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그 때마다 늘 느끼는 건,
커피를 끊는다는 것 자체보다,
커피를 끊겠다고 결심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거다.
(결심하고 나면 끊을 수 있다는 자신감인지도 모르겠으나...)
오늘도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잠시 고심했었다.
...끊어볼까...
그러나,
맛없는 차보다는 맛없는 커피가 훨씬 참기 쉽고,
(누군가와 함께 익숙하지 않은 까페나 찻집을 가게 될 때...)
이미 여기저기 자리잡은 스타벅스의 유혹도 뿌리치기 힘들며,
(혼자라면 테이크 아웃 커피가 역시...)
찬장에 들여놓은 원두커피가 아직도 꽤 남아있어,
또 한동안은 접어두기로 했다.
남들은 그래도,
굳게(?) 결심하고 작심삼일(!)...까지라도 가 보는데,
나는 대부분 그렇듯이 오늘도,
...끊어볼까...에서 머뭇머뭇거리다,
결국 결심까지도 이르지 못한 셈이다.
아마도,
찬장에 들여놓은 원두커피가 바닥을 보일 즈음에,
다시 한 번 고심하게 되지 않을까.
[2008/12/17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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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텀싱어 .....
[2017/12/16 00:20]
막연하게 오디션 프로그램이라고만 알고 있다 뒤늦게 보게 되었다.
시즌 1,2를 보면서 다시 확인하게 된 것들.
역시 멋지다.
- 저음 (켈틱 우먼 내한 공연 때는 잘 몰랐던 손태진씨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 IL DIVO (평소 가사가 들리지 않는 음악을 선호하지 않아서 팬은 아니지만 앨범이 나오면 CD를 산다.)
- Josh Groban (평소 가사가 들리지 않는 음악을 선호하지 않아서 팬은 아니지만 앨범이 나오면 음원을 산다.)
그리고 락커는 역시 대단하다.
"진심은 항상 통하지는 않는데... 통하면 무서운 것 같긴 해요."
- 연극배우 이정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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