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리스트
글
∟ 그림자밟기
2022. 3. 13. 06:17
..... 우연으로도 충분했던..... .....
그 시절에는 선배가 없다.
고학번에 친구들이 있었으니 굳이 불편한 선배라는 존재가 필요하지도 않았고,
내 형편없는 대인관계로 단단한 동문 기반의 틈을 파고들 수도 없었을테고,
유일하게 기억하는 선배는 내가 그림자로 만들어 버렸기에.
도서관을 오가며 옆자리에 잠깐 시선을 두곤 했던 게 시작이었다.
둘 다 그리 성실한 편은 아니라서,
그저 다녀간 흔적을 확인하는 정도였는데,
그걸로도 충분했었다.
지나는 길에 그의 방 창문을 슬쩍 바라보곤 했다.
불이 켜져 있는지 꺼져 있는지.
차츰 길을 돌아서 그 앞을 지나는 날을 늘었고,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불 꺼진 창에 잠시 스치는 시선을 두려고 그 길을 걷게 되었다.
그림자.
옛 사람을 잊기 위한 비겁함이라는 자각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내게 그저 고마운 사람이 되었다.
우연으로도 충분했던.
그럼에도 잊기 어려운.
'∟ 그림자밟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잊혀진 끄적임 ..... (0) | 2025.03.11 |
---|---|
..... ..... ..... (0) | 2024.10.04 |
..... 오노 요코 & 존 레논 ..... (0) | 2024.10.01 |
..... 편지 ... 그리고 ... 쪽지 ..... (0) | 2004.12.19 |
..... 사랑의 확신... ..... (0) | 2004.12.08 |
RECENT COMMENT